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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23 18:29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글쓴이 : 기도의집
조회 : 13,998  

 

Apotheosis of St Ignatius-BACICCIO.

c.1685.Oil on canvas, 48 x 63,5 cm.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

 

 

축일: 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St. IGNATIUS of Loyola
Sant' Ignazio di Loyola Sacerdote
Loyola, Spagna, c. 1491 - Roma, 31 luglio 1556
Born:1491 at Loyola, Guipuzcoa, Spain as Inigo Lopez de Loyola
Died :31 July 1556 at Rome
Beatified:27 July 1609 by Pope Paul V
Canonized:12 March 1622 by Pope Gregory XV
Ignazio = di fuoco, igneo, dal latino
Emblema: IHS (monogramma di Cristo)
예수회(Society of Jesus)창설자

 

 

 

 

예수회의 설립자인 이냐시오는 1491년 스페인 로욜라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군인으로서 높은 명성과 행복을 누리고 있을 때 1521년 팜플로나 전투에서 포탄에 맞아 다리를 다쳤다.

 

그는 회복기 동안 소설 대신에 그리스도의 일생과 성인전을 읽으면서 큰 감명을 받고,

자신을 그리스도께 봉헌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는 동안 그의 양심은 크게 자극을 받았으며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전환이 시작되었다.

환상 속에서 성모님을 뵙고 난 다음, 몬세라트에 있는 성모님의 성지로 순례를 떠났다.

거의 일 년 동안 만레사 근처에 머물면서 때로는 도미니코회수사와 함께, 또 어떤 때는 극빈자 수용소에서,

혹은 언덕의 동굴 속에서 기도하며 지냈다.

 

카다란 마음의 평화가 있은 후로는 망설임이라는 무서운 시련이 거듭되었다.

기도,단식,성사,고행 등 그 어떤 것에서도 위안을 얻지 못하던 그의 마음에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다.

그때가 바로 그의 가장 위대한 저서인 "영신수련"을 저술하기 시작했던 때로서 전환의 시기였다.

 

 

 

 

대부분 만레사에서 쓰여진 영성수련은 신비체험을 통해 얻은 그의 영성적 통찰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로마와 예루살렘을 탁발 여행,스페인으로 돌아가기 전에 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바르셀로나의 어린 학생들에게 문법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유럽의 여러 대학을 다니며 어렵게 공부하여 마침내 파리 대학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524-1534)

 

 

1534년,그와 다른 여섯 명-그 중 한사람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였음-은

자선과 청빈의 생활을 하며 성지로 갈 것을 맹세했다.

만일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교황의 사도적 봉사에 헌신할 것을 맹세했다.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하비에르)Francisco Xavier (Spain, 1506).

First Jesuit Missionary,India,East Indies,Japan,1540-1552 :축일:12월3일,게시판783번.1504번)

 

후자가 선택되었고 4년 후에 이냐시오는 영구적인 단체를 만들었다.

이 새로운 예수의 단체(예수회)는 1540년 바오로 3세에게서 인준을 받았으며,

이냐시오가 초대 수도원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예수회 회원들이 교황에 의해 여러 포교지로 파견되었을 때 이냐시오는 고아,입교자,참회자를 위한

집을 짓고자 모범적인 일을 새롭게 강화하면서 로마에 머물렀다.

그는 로마 대학을 설립하였으며 그 목적은 그 사회의 다른 모든 단과 대학의 모범이 되는 것이었다.

또한 저술과 제자 교육으로 훌륭한 사도직을 수행하였고,

영신수련을 위한 복음 묵상과 영적 지도로 하느님 나라 건설에 헌신하였으며

그 제자들은 교회 개혁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삼위일체,그리스도,성체성사 등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기초위에서 영성 생활을 했다.

그의 영성 생활은 예수회의 좌우명인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Ad Majorem Dei Gloriam)"속에 표현되어 있다.

 

순명은 가장 으뜸가는 미덕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였으며,

예수회 회원들의 활동성과 능률은 바로 순명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증해 주었다.

모든 행동은 교회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로마 교황에 대한 조건없는 순명에 따라 인도되었다.

따라서 모든 예수회 회원들은 세가지 서원에 이어 교황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그들을 어떠한 곳에 보내든지 그곳으로 간다는 네 번째 서약을 한다.

 

 

이냐시오 성인의 가장 큰 업적은 예수회를 통해 교회를 안으로 부터 개혁시킨 데 있으며

예수회는 교육사업과 성사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그리고 새로 발견된 이교 지역의 복음화를 통해

종교 개혁으로 타격받은 로마 가톨릭 교회를 회복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성인은 1622년에 시성되었고,피정과 영성수련의 수호자로 공경받고 있다.

(오늘의 말씀에서)

 

 

St Ignatius Loyola (detail)-MONTANES, Juan Martinez.
c. 1610.Polychromed wood.Chapel,Seville University

 

만레사에서 이니고는 영신수련이라는 그의 소박한 책의 골자를 잡았다.

이것은 기하학의 공식처럼, 서정적이랄것이 거의 없지만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불태웠고,

교회역사를 영웅들로 채워왔다.

영신수련의 독창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다.

이것이 금욕주의적 전통을 따르고 있고 다소 다른 영성작가들의 작품을 기초로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을 농축해서 한권으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가장 고귀한 가슴의 고통스런 경험에 의한 것이다.

몬세랏에서부터 만레사까지 절뚝거리며 걸어온 "숭고한 방랑자"

한번은 만레사로부터 조금 떨어진 작은경당으로 가는 길에서, 그는 맑게 흐르는 까르도넬 강을 보며

길가의 십자가 근처에 앉았다.

 

그렇게 앉아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눈깜짝할 사이에

그가 남은 여생동안 배워야 할 만큼 많이 영성적인 것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그의 마음에 비추어졌다.

"이것에 의해서 그의 이해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것처럼,

그에게 다른사람의 마음이 주어진것처럼 밝아졌다."

진정 다름 마음, "그리스도 예수 안에도 있던 그 마음" 1523년 2월 말쯤 그는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예수회홈에서

 

 

 

 

루터는 1517년, 비텐베르크에서 교회의 문에 자기 논문들을 붙였다.

그로부터 17년 후에 이냐시오는 가톨릭 종교 개혁을 위한 너무도 훌륭한 역할을 수행할 수도회

"예수회"를 설립했다.

개신교도들에게 그는 용서할 수 없는 적이었다.

그러나 교회 일치 운동의 근원은 그의 말 속에서 발견된다.

 

"만일 어떤 이단자들이 박애와 그리스도교적 중용의 본보기를 보여 준다면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정통파의 진리를 드러내는 데 깊은 배려를 해야만 한다.

그들의 잘못에 대해 어떤 종류의 경멸도 나타내서는 안되며, 혹독한 말도 해서는 안된다."

현대 교회 일치 운동에 공헌한 가장 위대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은 예수회 회원인 베어 추기경이었다.

 

 

성 이냐시오의 희망은 군인이었으나

 전쟁 때 다리를 심하게 다친 후 군인으로 살겠다는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는 30대 중반에 학교로 돌아가서 43살에 졸업했다.

 

그래서 그는 군인의 수호 성인인 동시에 만학도들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뒤늦게 학교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젊어서 진학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나 공부를 마치기 전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학교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다.

만학도들은 뒤늦게 배우는 만큼 학교 수업도 더 진지하게 듣는다.

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대학에 다닐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쉰 살이 다 되어서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 하였다. 주위에서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시작하지 않는다면 제가 어떻게 교사가 될 수 있죠?"

 

성 이냐시오가 학교로 다시 돌아가 자기 나이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어린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받고

그래서 훗날 큰 수도회인 예수회를 세운 것처럼,

당신에게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만한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꼰벤뚜알프란치스코홈에서www.ofmconv.or.kr)

 

 

루이스 곤살레스가 성 이냐시오에게 직접 듣고 쓴 행적기에서

(Cap. 1,5-9: Acta Sanctorum Iulii, 7[1868],647)

 

여러분의 영이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십시오

 

이냐시오는 유명한 사람들의 비상한 행적을 기록한 저속하고 공상적인 책을 즐겨 읽었다.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느꼈을 때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자 그런 책을 갖다 달라고 했다.

그러나 요양하고 있던 집에는 그런 책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 모국어로 된 [그리스도의 생애]라는 책과

[성인들의 꽃]이라는 책을 그에게 주었다.

 

이 두 권의 책을 자주 읽으면서 그 책에 담긴 내용에 어떤 공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 책에서 마음을 떼어 전에 늘 읽던 그런 저속한 이야기로 생각을 돌리고

또 어떤 때는 그 생각에다 마음까지 돌리곤 했다.

마음속에 이런 무절제한 생각들이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는 가까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최근에 읽은 책의 영향으로 이런 생각들을 지금의 생각에다 굴복시켰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생애를 읽으면서 자주 자신에게 말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복된 프란치스꼬와 도미니꼬가 한 것을 나도 한다면?"

그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오랫동안 맴돌았다.

 

이런 생각은 얼마 동안 지속되었지만 다른 것들이 끼어 들어와

이전의 저속하고 공상적인 생각들이 되살아나곤 하여 그것들도 오래 지속되었다.

이렇게 꽤 오랫동안 두 가지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서 교차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생각 사이에는 하나의 차이점이 있었다.

그가 저속한 생각을 가지고 즐기는 동안 그 순간에는 큰 기쁨을 느꼈지만

그 생각에 싫증을 느껴 흘려 버리고 나면 슬픔과 공허를 느꼈다.

한편 성인들이 실천했던 고행의 생활을 생각할 때 느낀 기쁨은 생각하는 중에만이 아니라

생각을 마친 후에도 계속 남아 있었다.

이냐시오는 이 차이점을 보기는 했지만 그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마침 어느 날 영혼의 눈이 활짝 열려 이 차이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체험에서 어떤 생각들은 슬픔을 주고 또 다른 생각들은 기쁨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그가 하느님의 것에 관해 도달한 첫 중요한 결론이었다.

훗날 자신이 ’영신 수련’을 할 때

이 체험은 자기 제자들에게 준 ’영의 식별력’이라는 가르침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로욜라의 이니고는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와 지극히 엄위하신 당신 어전과 예수회 앞에서 전능하신 하느님과,

그의 지상 대리자인 교황께, 우리 주 예수의 회의 교서와 회헌에 선포된 삶의 양식에 따라

청빈과 정결과 순명을 서약하나이다.

더욱이 나는 교서에 언급된 선교에 관하여 교황께 특별 순명을 약속하나이다.

또한 동일한 교서와 회헌에 따라 어린이들의 신앙 교육에 성실한 관심을 가질 것을 약속하나이다."

 

 

 

주여 나를 받으소서.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과 지성과 의지와,

저에게 있는 모든 것과 제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받아주소서.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주여,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도로 바치나이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오니 온전히 주님의 뜻대로 주관하소서.

저에게는 주님의 사랑과 은총만을 허락하소서.

저는 이것으로 만족하리이다.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봉헌기도-

 

 

Dedication to Jesus

 

Lord Jesus Christ,
take all my freedom, my memory,
my understanding, and my will.
All that I have and cherish you have given me.
I surrender it all to be guided by your will.
Your grace and your love and wealth are enough for me.
Give me these, Lord Jesus,
and I ask for nothing more.  Amen.

 

 

 

 

교회의 역사를 보면 이단이 성행하여 교회가 위험에 이르면

반드시 하느님께서는 위대한 성인을 보내시어 이를 보호하신다.

마르틴 루터가 이단을 만들어 여러 사람을 현혹케 할 때에도 역시 하느님께서는 교회의 기둥,

진리의 옹호자로 한 유명한 성인을 보내셨으니, 이는 곧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라는 분이다.

 

그는 1491년 바스크 지방에서 유명한 로욜라라는 고성(古城)에서 영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양친은 모두 신심이 두터운 분이었다.

그러나 이냐시오를 수도자로 만들 생각은 없었고, 본인 역시 어려서부터 장차 용감한 기사로 출세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의 사업보다 오히려 명예와 쾌락을 더 원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오묘한 하느님의 섭리는 이 세속의 아들을 위대한 성인으로 만드셨고,

또한 진리를 선포하는 수도원의 창립자로 만드셨다.

 

스페인이 프랑스와 전쟁하던 때이다. 그때 30세였던 이냐시오는

전쟁에 참가해 팜플로나라는 요새를 수비하던 중 폭탄에 맞아 다리에 중상을 입어 치료하는중에

여러 책을 읽다가 성인전과 샤르트르(카르누시오)수도자 루돌프가 저술한 ’그리스도의 생’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점점 읽어갈수록 정신을 빼앗기게 되었고,

자연히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어 현세의 허무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영신의 눈이 뜬 이냐시오는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외출할 수 있게 되자,

유명한 몽세라트 산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을 순례하고,

그곳에 보존되어 있는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성모 마리아의 상본 앞에 무릎을 끓고 하루 밤을 기도로 지샜다.

이튿날 아침, 그는 자신의 갑옷을 성당에 바치며 화려한 기사의 복장은 걸인에게 자선하고

그 대신 고행의 복장을 하고, 만레사 시에 가까운 어떤 동굴안에 살게 되었다.

 

그 후 10개월 동안 고독한 가운데 오로지 기도와 고신 극기의 생활을 했다.

이와 같은 명상적 생활을 하면서 ’영신 수련’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책은 묵상을 가르치는데 후세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었는지 모른다.

전에는 현세의 영예만을 추구하던 그가 10개월간의 수양을 하는 동안 성령의 은혜를 받아

완전히 회개하는 동시에, 자기에게 맡겨진 특별한 사명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병사로서 동료들을 모아

영적 십자군을 일으켜 끝까지 진리를 위해 싸우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선행의 첫 단계로서, 주님께서 수난하신 성지 예루살렘을 순례하려고 했다.

그러나 때마침 투르크 황제 소리만 1세가 그리스도 신자를 극도로 박해하고 있던 터라,

그는 프란치스코회 관구장의 권고에 의해 스페인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당시 이냐시오는 이미 33세였는데, 자기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사제가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남의 조소를 받아 가며 그 나이에 고등 학교에 들어가고 다음 대학에까지 가서

청소년들과 마친가지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틈틈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동료들을 규합하려고 했으나,

도리어 커다란 오해를 사게 되고, 잠시 이단자로 취급되어 결박당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미소를 띄며 "나는 예수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결박되기를 원합니다.

이만한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한 그의 희생과 인내가 보답되어 비로소 두 제자가 생긴 것은 1529년의 일이었다.

그들은 즉 성 베드로 파브로와 후에 동양의 대 사도가 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였다.

 

*성 베드로 파브르 축일:8월11일

 

그 후 또 네명의 훌륭한 대학생들도 이에 참가했으므로,

이들 7명은 우선 이냐시오와 같이 묵상을 하고 1534년 성모 승천 축일을 기해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 성당에서 서원을 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성 이냐시오는 제자들과 함께 다시 성지 순례를 계획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병으로 인해 할 수없이 연기하게 되었고

,의사의 권유로 스페인으로 돌아와 1년간 수양해야만 했다.

고향 사람들은 전에는 화려한 갑옷으로 몸을 감고 백마를 타고 씩씩한 모습으로 출정했던 귀공자가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를 보고 놀라며 한편으론 감탄했으나,

 이냐시오가 로욜라 성에 살지 않고 병자의 간호도 해 주는 것을 보고 더욱 그에 대해 감탄하는 것이었다.

 

 

 

건강을 회복하자, 그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가서 그곳에서 제자들을 불러놓고

곧 예루살렘을 항하여 출발하려고 했다.

이때가 1537년의 봄이었는데, 아직도 투르크 인들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심하다는 소문을 듣고

성지 순례는 단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지 순례는 중지하고 그대신 수도회에 관한 교황의 인가를 얻기 위해 로마로 돌아오게 되었다.

 

구원의 성도 로마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다.

이냐시오가 도중에 있는 ’라스토르타’라는 소성당에 들어가서 기도를 바치고 있으니까,

갑자기 황홀한 탈혼 상태에 빠져 성부께서 나타나시고 그 옆에 십자가를 지닌 예수의 용모가 보였다.

예수께서는 부드럽게 그를 바라다보시며 "로마에서 너에게 은혜를 주겠노라’말씀하셨다.

이때 그의 마음속에 외친 환희는 실로 큰 것이었다.

 

 

 

 

 

과연 로마에 도착한 후로는 만사가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그들은 당시의 교황 바오로 3세에게 알현을 청했는데 쾌히 승낙을 얻고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1540년 9월 27일에는 그들의 수도회 예수회에 대한 인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이 수도회가 종래의 다른 수도회와 다른 점은, 교황에게 특별 순명을 서원하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용감한 병사로서 그 영적 왕국을 위해 어떠한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고

분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마르틴 루터가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하고 수많은 신자를 교회에서 갈리게 한 때도,

이냐시오와 그 동료들은 분연히 일어나서 진리를 위해 싸우며 교회의 손해를 보충하는데

전력을 다했던 것이다.

 

 

이냐시오는 수도회의 인가를 받고 난 후 겸손한 마음으로 총장직을 사퇴하려고 했으나,

교황의 직접 명령으로 15년간이나 그 직에 있으면서 회원들을 지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의 생활은 극히 검소하고 엄격했다. 그

의 수면은 3, 4시간에 불과했으며,

많이 기도하고 고신 극기하고 소박한 음식에 만족하며, 때로는 몇개의 구운밤으로 식사를 메운 적도 있었다.

이처럼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했으나 타인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며 온순하고,

매우 사랑에 가득 찬 태도로 대했다. 제자들에게도 항상 그와 같이 할 것을 권하고,

고행은 완덕에 있어 중요한 것이지만 또한 건강을 해칠 정도로 가혹히 해서는 안 된다고 훈계했다.

그리고 자신을 아끼지 않고 남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된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그의 덕행은 모든 사람들에게 단연 모범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그의 공적은 소위 종교 개혁자들의 교회 손실에 대한 가톨릭 교세의 회복에 노력한 것인데,

그의 묵상 운동과 또한 그의 제자인 성 베드로 파브르

교리서의 편찬으로서 유명한 성 베드로 가니시오의 활동은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

교회의 존귀한 투사인 이냐시오는

1556년 7월 31일 로마에서 무수한 덕행과 공덕으로 장식된 영혼을 하느님께 바치게 되었다.

 

 

*성 베드로 가니시오 사제 축일:12월21일,
*성 베드로 파브르 축일:8월11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축일:12월3일,

 


 

 

’타는 불’이라는 뜻인 이냐시오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헤매는 많은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고,

냉담한 마음속에 정열을 북돋아 주었다.

실로 이냐시오의 생애를 상징하는 표어를 말한다면

’나는 이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습니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루가 12, 49)라는 구절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가 질러 놓은 불은 점점 퍼져나가 신앙부흥의 대업을 완수했다.

이로써 위대한 이냐시오의 공적은 길이 빛날 것이다.

그는 1622년에 시성되었고, 피정과 영신 수련의 수호 성인으로 선언되었다.

 

 

 

 

Soul of Christ (Anima Christi)

 

Soul of Christ, sanctify me.
Body of Christ, save me.
Blood of Christ, inebriate me.
Water from the side of Christ, wash me.
Passion of Christ, strengthen me.
O good Jesus, hear me.
Within Thy wounds hide me.
Separated from Thee let me never be.
From the malignant enemy, defend me.
At the hour of death, call me.
And close to Thee bid me.
That with Thy saints I may be
Praising Thee, forever and ever.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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