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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23 18:38
성녀 지타
 글쓴이 : 기도의집
조회 : 10,203  


축일:4월27일
성녀 지타 동정
ST. ZITA
Santa Zita (Cita) Vergine

Born:1218 at Monsagrati near Lucca, Italy
Died:27 April 1272(1278) at Lucca, Italy
Canonized:5 September 1696 by Pope Leo X and Pope Innocent XII (cultus confirm!!!!ed)
Zita = (forse) vergine, dal persiano = (perhaps) vergine, from the Persian




지타는 페르시아어의 ’처녀’란 뜻에서 온 것이다.
이탈리아의 몬떼 사그라띠에서 출생한 성녀 지타는 12세의 어린 나이로 루가 근방의 어느 양모 업자집의 하녀로 들어갔다.
그녀는 근면하고 열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극도의 고행을 실천한 관계로 동료들의 시기와 음모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끝내는 그들을 모두 감동시켰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감옥에 갇힌 범법자들에게 사람을 베풀었으며 수많은 기적까지 행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거의 48년 동안 파띠넬리가의 하녀로 일하였고, 1696년에 시성되었으며, 하인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루가지역의 파티넬리의 귀족집안의 하녀였다.
그녀의 친절과 온유함 그리고 깊은 신앙심으로 온 집안에서 총애를 받았다.
성녀의 시신은 지금까지도 부패되지 않았으며 성 프레디아노 성당에 가면 지금도 참배할 수 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성녀 지타는 이탈리아의 몬테 사그라티 마을 출신의 가난한 양친의 자녀로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으므로 어린아이를 길러야 할 책임은 연약한 어머니 홀로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신심이 두터웠던 어머니는 자신의 좋은 모범으로 자녀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어려서부터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힘썼다.
“기도하고 또 일하라”는 말은 지타가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거의 입버릇처럼 늘 들어왔던 것이다.
그 후 지타는 이 말을 항상 명심해서 일생동안 잊지 않고 성덕을 닦는 토대로 삼았던 것이다.

12세 때 그녀는 루가라는 마을에 사는 어떤 고귀한 가정의 여종으로 일하게 되었다.
너무 지나친 그녀의 겸손과 경건한 태도는 처음에는 도리어 남들에게 멸시를 당하게 되어 무척 학대도 받게 되었으나,
그녀는 자신을 억제하며 모든 것을 잘 인내했다.
그러던 중에 그녀의 경건, 순명, 충실, 책임에 대한 열성은 그녀에게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했다.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지타를 성녀와 같이 경애하기에 이르렀다.


지타는 바쁜 생활에서 미사 참여와 기도할 틈을 내기 위해서 매일 아침 아직 어두운 새벽에 일어났다.
그녀는 그들에게 봉사라는 것이 바로 자기에게는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저녁에 하루의 일을 마치고 나서 그녀는 기꺼이 성사나 신심서를 읽었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자신의 오락을 누리는 때는 없었다.
지타의 최대의 기쁨이나 최대의 위안은 하느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것밖에 없었다.

일하기 전에는 언제나 기도를 바쳤고, 일하는 도중에도 지타는 끊임없이 하느님을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종종 간단한 화살기도를 바쳤다.
이렇게 그녀는 충실함과 책임감이 강한 점으로 모든 일꾼들의 모범이 되고,
어떠한 명령에도 불평이나 불손한 언사는 하나도 없이 완전히 이를 수행하며 손톱만큼이라고 주인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고
또한 주인 식구에 대한 흉이나 원망의 소리를 입밖에 내는 때가 없었다.




지타는 가련한 여종의 몸이었지만 가난한 이와 고생하는 이에게는 언제든지 어머니와 같이 대했다.
자기가 받고 있던 적은 보수나마 거의 전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가난한 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주인의 허가를 얻어 자신의 음식까지 절약한 때도 있었다.
또한 주인의 식구 중에서 떨어진 옷이 있게 되면 그것을 다 꿰매어서 헐벗은 이에게 주는 것이었다.

이처럼 관대한 빈민에 대한 사랑을 하느님께서도 보답하시는 뜻인지 종종 기적으로써 갚아 주시는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병고로 쇠약해진 거지가 그 집 문 밖에 와서 한 모금의 포도주를 청했다.
그러나 때마침 포도주는 한 방울도 없었으므로 지타는 할 수 없이 냉수 한 잔을 주니까 그는 매우 맛이 있는 듯이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냉수는 어느떳 비싼 포도주로 변해졌던 것이다.




지타가 우가의 가정에 있기를 48년, 시종일관 성심성의껏 주인을 위해 일했으나 점차 체력도 쇠약해져
거동이 부자유스럽게되자 주인은 일체의 일을 면제해 주면서 오로지 요양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부지런하던 지타는 “제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죽는다는 것은 견딜 수 없습니다”하고 대답하며
될 수 있는 데까지 일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에 들어갈 날이 다가왔을 때에 지타는 열심하고도 경건한 태도로 노자성체를 영하고,
1272년 4월 26일 60세를 일기로 새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녀가 죽은 후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으므로 인노첸시오 12세 교황은 1696년에 지타의 시성식을 성대히 거행했다.
성녀는 지금도 일반 고용인들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이상

누구나 한 번쯤은 의사, 법률가처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직업을 갖거나
연예인이나 프로 축구 선수처럼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을 갖기를 원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사업을 운영하거나 큰 기업체의 고위 간부가 되는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의 꿈은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원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혹시 인생이 자신의 꿈대로 이루어지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

하느님은 우리의 인생을 경이로움과 축복으로 가득 채워 주신다.
성녀 지타가 자라면서 무엇이 되고 싶어했는지는 알 수 없다.
결혼해서 자녀들을 키우고 싶어했을 수도 있고, 시토회의 수녀인 언니처럼 수도자가 되기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꿈이 무엇이었든 지타는 12살의 나이에
털실과 비단을 직조하는 이탈리아 상인의 하녀로 들어가 48년 동안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며 살았다.
지타는 비록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축복으로 바꾸었다.

그가 6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지타는 그 집 식구들에게 하녀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친구요 조언자였으며, 성인이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의 꿈은 무엇인가?
그 꿈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나?
나는 내가 하는 일에 가치가 있음을 안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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